마태 9.36~10.8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파견하셨다. - 김덕원토마신부님 강론
어느 날 어느 수도원에서 어느 수사 한 분이 한 시간 동안 성체조배를 할 차례가 되어 성당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그 수사는 곧 앞선 당번 수사가 의자에 않은 채로 코를 골며
세상 모르게 곯아떨어져 자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를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그 수사는 잠을 자고 있는 형제가 아닌 성체를 향해
큰 소리로 기도를 했답니다.
"주님, 감히 주님 면전에서 자고 있는 이 게으른 형제를 용서하소서!"
그때 성체에서 주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이셨겠습니까?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수사야, 조용히 해라! 네가 나까지 깨웠다. 나도 자고 있었는데 말이야!"
이 이야기는 우화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성체를 향해 큰 소리로 기도했던 수사는 열심히 살던 수사일지 모릅니다.
성체조배를 열심히 하고, 미사 전례에 거룩히 참여하며,
수도회원으로서 맡은 바 직분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도 이렇게 쉴 새 없고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그에게는 엿보입니다.
그러니 성체를 향해 그 형제를 게으르다고 판단하고 용서를 당연한 것으로 청할 수밖에요.
그는 아마도 하느님이 이런 건실하고 바르며 항상 노력하는 자신의 청을
당연히 들어 주시리라고 생각했겠지요. '
그렇지 않다면'이라는 가정을 결코 해 볼 필요도 없는 당연한 것인데,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계시죠.
"조용히 해라." 그 수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어떠했겠습니까?
아마도 그 수사는 골방에 들어가서 무지하게 울었을 것입니다.
"평생을 바쳐 성인처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자부할만큼 열심히 하느님을 위해 살아온 나에게
칭찬은 고사하고, 오히려 그 게으르고 열심하지 않은 수사를 두둔하면서 나에게 면박을 주다니"하며
하느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을 것입니다.
이 수사의 이야기 가운데 수사가 정말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는지, 않는지는 바로 여기가 고비입니다.
수사가 바로 하느님이 말씀하신 참 뜻을 알아들었다면,
그는 평생 자신을 답답하게 묶고 있던 그 오랜 쇠사슬의 멍에를 풀고,
자유롭게 영혼의 세계로 날아 하느님께로 다가섰을 것이고,
그러하지 못했다면 살아 있는 하느님을 원망하며 죽은 하느님과 함께 세상으로 나갔을 것입니다.
수사에게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참 뜻은 사랑과 용서입니다.
당신 앞에서 졸고 있는 게으른 수사와 함께 눈을 감고 계시는 하느님의 마음은 측은지심입니다.
그 불쌍한 영혼을 위해 당신 또한 침묵하며 인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출애굽 34.6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야훼다. 자비와 은총의 하느님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이다.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베푸는 신, 거슬러 반항하고 실수하는 죄를 용서해 주는 신이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들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고통스러워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당신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수많은 당신의 벗들,
즉 우리 자신과 이웃들을 위해 부족한 제자들을 파견하시기로 결정하십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여라.
" 석가모니가 이 세상은 고해의 바다라고 했는데,
그럼 우리는 세상이라는 바다에 예수님이라는 산소통을 메고 파견되는 잠수부와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먼저 모범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산소통을 메고 이 세상의 바다에 뛰어 들어오셨습니다.
이제 당신이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제자들에게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사제나 수도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라는 산소통을 메고 호흡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예수님의 말씀,
사람을 대하는 온유한 태도,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사랑스런 눈길,
영혼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느낌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고, 그분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반면에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그리고 우리를 통해 용서하시는 분, 용기를 주시는 분,
자비로운 분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 서십니다.
요즘 세상은 정신이 없습니다.
동네방네에는 웰빙바람이 불어서 너도나도 육신을 다듬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뉴에이지 열풍에 빠져서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아이들과의 대화에 자신 없는 부모들은 그들을 학원에 떠맡긴 채 나 몰라라 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조금만 어려우면 '산다, 못산다' 막말해가면서 가정을 너무나 쉽게 내팽개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조차 주5일 근무다 뭐다 해서 주일날 주님과의 데이트를 거부하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열심히 놀러 다니는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잘 익은 곡식을 얻기 위해 봄비와 가을볕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을 지니신
주님을 본받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연민 가득한 눈빛과 다가와 말을 건네시고 손으로 쓰다듬어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잊어버리면
우리도 금방 바닷물에 질식되어 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주님의 이 모습은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이며,
사랑을 잃어버리고 점점 꺼져가는 이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에너지원이 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하나,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고자 하는 그것 하나 아니겠습니까?
이 간절한 소망을 우리 이웃과 함께 청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들에게도 예수님의 산소통을 메고 이 고해의 바다를 헤쳐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노력을 합시다.
주님께서 너무나 기특하다고 하실 것입니다.
아멘
인천교구 산곡3동 성당 김덕원 토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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