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저는 당신을 찢습니다.
“여기 하나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이를 받아 모시는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게 하소서.”(미사경문 중에서) 평화의 인사가 끝나고 사제는 이 기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반으로 쪼개고 찢습니다. 그분의 몸을 찢으면서 묘한 감정이 어느 순간 내 심장을 찢어내고 있습니다. ‘사제는 늘 주님을 찢는 존재이구나! 누구보다 먼저 당신의 몸을 찢는 존재. 당신을 아프게 하는 존재이겠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찢어지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는, 찢어지지 않으면 부활을 표현할 수 없는, 찢어지는 죽음의 순간을 넘어 다시 하나 되는 순간을 맛보게 되는, 그리고 나에게도 찢기는 아픔을 영적으로 극복하게 해주는 화해의 순간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삶에서 많은 부분 찢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순간들을 봅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상처 받기 싫고, 어려운 일을 멀리하고, 좋아하는 일만 하려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려했던 순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루카 10, 25-37)에 나오는 사제와 레위처럼 이웃의 어려움을 회피하면서 자신의 사제직을 정당화하는 나의 모습이 비쳐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늘 묘한 감정으로 당신의 미사를 바라보게 해주십니다. “찢기지 않으면, 쪼개지지 않으면 몸과 피가 하나가 될 수 없듯, 다시 부활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리하여 쪼개진 몸을 다시 합하여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들은 복되도다.”(미사경문 중에서)
그분의 이러한 초대는 성작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다가옵니다. 성작에 당신의 피와 몸이 하나된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 순간 그분의 피 안에 그려진 나의 얼굴이 보입니다. “요한아, 내 안에 늘 네가 있었단다. 너의 상처 받은 마음 안에, 네가 찢어 낸 나의 몸 안에 늘 네가 있었단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여, 마음이 찡해지고 가슴 한 구석에서 ‘용서받았다’라는 기운이 코끝을 시리우며 올라옴을 체험하게 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먼저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마음을 찢어내는 존재였는데 당신은 그러한 저를 언제나 용서하시고 받아주시고 담아주셨음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눔의 마음, 내려놓는 마음을 이 시간에 봅니다. 사랑하기 위해선 자신을 내어 놓진 않고선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금 기억해 봅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5)
박요환 세례자 요한 신부 / 만수3동 본당 주임
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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