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믿음
팔레스티나의 집은 지붕이 편평하고 밖으로 계단이 나 있다. 지붕에는 서까래를 드문드문 놓고 그 위에 풀이나 나뭇가지를 깔고 흙을 덮었다. 흙을 걷고 서까래를 하나쯤 들어내면 그리로 들 것을 내릴 수 있었고 또 관을 들이고 내기도 했다. 어느날 예수님이 카파르나움이라는 동네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는데 갑자기 지붕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흙먼지가 떨어지는게 아닌가! 친구들이 지붕을 뚫고 예수님 계신 곳까지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려 내려 보낸 것이었다. 사람들이 책망과 손가락질등 웅성거리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신다.
이 이야기의 훌륭한 것은 친구의 믿음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친구들의 어떤 신안을 보고 기적을 행하셨는가?
1.첫째로 행동하는 믿음이었다. 신앙이란 이론이 아니라 행동이다. 중풍에 걸려 누워 있는 친구를 위해 위문카드나 위로의 말을 한것이 아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친구의 손과 발이 되어 한 몸이 된 것이다. 흥부전의 흥부는 착하기는 해도 비행동적이고 의존적 인물이었다. 그가 집을 짓는데 이렇게 기록 되어 있다. [청산에 들어가 아름드리 나무를 왕창 베어내어 안방, 사랑채를 네모 반듯이 짓는 것이 아니라 낫 한자루 지게에 꽂아 지고 수숫대와 뺑대를 베어 가지고 와서 괭이로 집터를 깍아 말직으로 얼기설기 엮어 한 나절도 안 걸려 지어 놓는다 ] 말하자면 수숫대로 작은 상잣집을 오전중에 완공했다는 뜻이다. 또 형으로부터 주걱으로 뺨을 맞고 돌아와서야 마누라를 붙들고 “내일부터 날 품이라도 팔자”고 했다.흥부란 사람은 아주 Easy going 이고 스케일이 옹졸하고 사고방식이 수숫대 집과 같은 것이었다. 카파르나움의 친구들은 수숫대 상잣집 처럼 허술한 것이 아니라 철저했고 임시적이 아니라 완전하게 도와 주었다. 예수님이 진짜 신앙인이라고 생각한 것은 이들 카파르나움의 친구들 같은 생활이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야고보 2,26)”
2.둘째로 그들의 용기였다. 회당까지 병자를 데리고 왔지만 사람들이 꽉차서 예수님께 갈 수 없었다. 길을 비켜주지 않는 인간의 벽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몰인정한 석벽이었다. 문이 막히자 그들은 지붕에서 문을 구했다. 지붕도 뚫을 수 없었다면 아마 땅 속으로 터널을 팠을 것이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도울 결심을 하신 것이다.
이렇게 복음서에는 종종 남을 위한 신앙이 나타난다. 카파르나움의 백인대장(마태8,5~3)은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위해 예수님께 부탁드렸고, 한 회당장(마태9,18)은 죽은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여 소원을 이루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의 신앙으로 자녀들이 구원 받는 경우가 많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신학교때 여러번 흔들렸는데 신학교 12년 동안 매일 묵주 기도를 바쳐 주셨다. 딴 마음이 생길 때마다 묵주기도 하는 어머니의 마음에 못을 박을 수 없어 제자리로 돌아 오곤 했다. 또 저의 아버지 영세를 위해 20년동안 묵주알을 돌리셨다. 칼라힐은 “하느님을 의지하고 옳은 길을 가라”하신 어머니의 목소리가 여러해 동안 가슴을 때렸다고 했다. 또 아우구스티노 주교는 본인이 회개하도록 기도하신 어머니 모니카를 두고 “그런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이 아들을 올바로 가게 했다”고 했다.
난 얼마나 남을 위해 기도했나? 남의 신앙을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는가? 생각해 보지만..., 글세다.
● 정윤화 베드로 신부┃교구 관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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