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교육 시장을 비롯하여 자녀의 교육비에 들어가는 돈만 매년 수십조 원에 이릅니다. 실례로 2004년 사교육시장의 규모는 약 14조원이라고 한국교육개발원이 밝힌 바 있으나, 어떤 자료에 의하면 41조원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뒤처지지 않고, 더 나아가 아이의 재능을 발견시켜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가정경제에 있어서 주요한 지출항목에 자녀 교육비가 자리를 잡은 것도 이제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만큼, 엄청난 돈이 사교육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에 비하면 그 결과는 아주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전 세계 대학의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대학들은 언제나 하위권 혹은 순위 밖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현상을 두고 “똑똑한 인간들은 죄다 해외로 유학을 가서, 우리나라 대학에는 인재가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 인도의 경우에도 수많은 인재들이 유학을 가지만 이 나라의 대학들은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음을 볼 때 이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전체 경제규모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어떤 핑계와 이유를 갖다 대더라도 교육의 투자가 상당히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돈과 노력, 시간을 투자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교육수준과 우리나라 학생들의 실력은 왜 좋아지지 않는 것일까요? 어렸을 적에 수많은 돈을 들여서, 자녀에게 시켜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이것저것 다 시켜보았는데도 왜 잘 하는 것이 하나도 없을까요? 어렸을 적부터 좋은 학원에 보내서 공부를 그렇게 시켰는데도, 왜 우리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하지 못하고, 흥미도 느끼지 못할까요?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공부나 자신의 재능을 살리는 것에 “흥미”와 “재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재미있는 일을 좋아합니다. 흥미를 느끼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는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를 마치고 열심히 학원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그 얼굴에 흥미와 재미는 없습니다. 그저 기계처럼, 짜인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적으로 몸을 이끌고 다닐 뿐입니다. 아이들에 왜 학원을 그렇게 열심히 다니냐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다니니까요.”라거나 “엄마가 다니래요.”라는 대답을 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재미있어서 다녀요.”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가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과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면, 정말 자신이 좋아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경우보다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합리화가 일어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억지로 하기 싫은 일도 하다보면, 그 안에서 보람을 찾고 재미를 찾게 되는 현상과 비슷합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하여 군대에 간 사람이 군대에서 보람을 찾으면서 군생활을 재미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직업군인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군대를 다시 가라고 하면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학원을 아무리 많이 다녀도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학원에서 잡념에 빠진다는 것은 눈에 보듯 뻔한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선생님 앞에서 최고의 수업을 듣는다고 하더라도 정작 학생이 집중하지 않고 의욕이 없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시간에 신나게라도 놀았다면 정신건강에는 더 좋을 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사교육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공부라는 것과 자신의 예능을 “과제”, “의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느끼게 하고, 이러한 생각은 당연히 공부를 싫어하게 만듭니다.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것이죠.
사람에게는 심리적 반발심이 있습니다.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것은 잘 하지만, 누군가가 시키면 하기 싫어지는 청개구리 심보 같은 것이죠. 음식을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도 자신이 원해서 만들 때에는 신이 나지만, 옆에서 누군가 음식을 만들라고 시키면 싫어지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원을 가던, 학교를 가던, 집에서 과외를 하던 자신이 원해서 해야 능률이 오르고 재미를 느끼게 돼서 자주 하게 되고, 그 결과 잘 하는 것입니다. 학원을 “가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고, 과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상, 아이들의 자발성(재미, 흥미, 동기)은 사라지게 됩니다. 요약하자면 부모의 투자가 자녀의 가능성을 키우기는 커녕 망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 1970년대에 심리학자들은 유치원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습니다. 첫 번째 집단의 아이들에게는 그림을 그린 후에, 그 대가로 사탕을 주었습니다. 두 번째 집단의 아이들에게는 그림을 그린 후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아무런 보상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주 후에 이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놀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림을 그리더라도 사탕은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 때 어느 집단의 아이들이 그림을 더 많이 그렸을까요? 실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보상을 받은 첫 번째 집단의 아이들이 더 많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두 번째 집단의 아이들이 더 많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자발성(동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집단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그림을 그린 이유를 보상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지, 자신들이 좋아서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집단의 아이들은 그림을 그렸지만 어떠한 보상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그림을 좋아해서 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보상이 아이들의 자발성을 헤쳤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물리적 보상이나 심리적 보상(칭찬)은 아이들의 자발성을 해치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무관심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되, 조건적인 칭찬과 보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체로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기준과 규칙을 제시하고, 아이들이 그것을 만족시켰을 경우 칭찬과 보상을 합니다. 이럴 경우에는 아이들은 자신의 흥미와 재미보다는, 부모가 주는 조건적 칭찬과 보상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고 칭찬과 보상이 없을 때에는 그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부모가 적극적일 수록 아이들은 소극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요? 맨 처음 무엇을 시작할 때에는 반드시 아이들이 원해서 해야 합니다. 부모가 다른 곳에서 정보를 듣고 아이에게 와서 “무엇이 좋다더라. 그러니 해봐라.”한다면 아이는 부모가 하라니까 시작은 하지만,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당연히 동기는 떨어지고, 정작 그것을 해야 할 때 지루함을 느끼게 됩니다. 시작을 아이가 원해서 한다면, 아이는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때 부모가 “이젠 됐다.” 라고 무관심하게 반응하지 말고, 아이에게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리고 와서 엄마에게 보여준다면, 엄마는 “의례적으로” 칭찬을 하거나, 혹은 “부모 자신의 기준”에서 칭찬을 하면 안됩니다. 아이에게 진정한 관심을 갖고 칭찬이 아닌 격려를 해주어야 합니다.
칭찬이란 것은 어떠한 조건이나 기준을 충족시켰기 때문에 하는 것으로, 평가의 의미가 있습니다. 뒤집어 놓고 본다면, 칭찬을 하는 부모는 언젠가 꾸중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잘했거나 좋은 성적을 받았기 때문에 칭찬을 한다면, 아이가 잘 못하거나 나쁜 성적을 받을 때에는 꾸중을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 아이가 얼마나 잘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고, 얼마나 그것을 즐겼는지 부모가 알아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격려(encouragement)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격려를 잘 못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평가하는 일방적인 칭찬은 잘할 수 있지만, 아이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격려는 잘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아이에게 자신감이 있다면, 이 아이는 자신이 무엇이든지 잘 할 수 있습니다. 잘하는 비결은 자주하는 것이니까요. 자주하려면 자신감이 필요하고, 좋아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주하다 보면 잘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원해서 시작한 것은 반드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부모가 원해서 시작했다면 그 일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고, 아이가 원해서 시작했다면 그 일의 책임은 아이에게 있습니다. 처음에 아이가 무엇을 원한다고 할 때, 그 일의 장단점을 모두 고려해서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의 책임과 한계에 대하여 알려준 다음, 그래도 원한다면 이 때 부모가 아이를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가 아이보다 한 발자국 먼저 나서게 되면, 아이는 언제나 따라가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먼저 가도록 하고, 부모는 아이의 뒤를 따라가면서 도와주면 됩니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뒤처지면 어쩌나 걱정이 들어서,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을 모두 시키고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의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마십시오. 가장 나쁜 일 중에 하나가 사람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는 다른 아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독특한 재능이 있습니다. 그것을 키워주는 것이 부모의 임무입니다. 또한 우리 아이의 재능을 빨리 발견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들어서, 너무 어렸을 적부터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내고 싶을 수 있습니다. 재능을 빨리 발견하는 사람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재능을 너무 늦게 발견해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재능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뛰어나고 잘하더라도 좋아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자녀교육이 지나치게 열을 올리는 부모들을 보면 자녀와 마음을 통하는 경우보다는, 자녀를 자신의 뜻대로 해보려는 경우나 자녀에게 마음을 쓰지 못해서 경제적인 것으로 보상해주려는 경우, 또는 부모 자신의 열등감 때문에 아이를 통하여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이 아니라, 부모와 진실한 소통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필요한 것은 수많은 지식이 아니라, 자신감과 따뜻함입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따뜻함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주변에 사람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지금 당장 아이가 무엇을 잘한다고 좋아할 필요도 없고, 못한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가 재미있어 하는지가 제일 중요합니다. 아이가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부모의 그늘을 벗어날 때 즈음에는 지긋지긋한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잘 하는 아이보다는 좋아하는 아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칭찬보다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지만, 고래를 날게 하지는 못합니다. 조건적인 칭찬보다는 무조건적인 격려가 우리의 아이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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