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기도하는 삶/사제글

져서 행복합니다 - 문용길 아론신부님

by 수영루치아 2016. 1. 24.

져서 행복합니다.

 

우리는 늘 이기는 삶만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늘 이겨야 하고 1등을 해야 하며, 다른 누군가를 제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또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무엇을 위해 이기고 1등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렇게 해야 하니까한다고 말할 뿐입니다.

다른 이유를 붙이자면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으니까가 전부입니다.

복음은 항상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복음의 정신이라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은 꼭 1등을 하고 이기며,

누군가를 앞서가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복하게 함께 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지난 주일에 포동 성당에서 참으로 재미있는 척사대회가 있었습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척사대회의 꽃은 바로 윷놀이겠지요.

포동에서는 이번 대회의 게임 규칙을 조금 바꿨습니다.

게임 내의 규칙은 변함이 없으되 일등을 정하는 방법을 바꿔버린 것입니다.

즉 지는 윷놀이를 하는 것이지요.

반별 대항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윷놀이였습니다.

다들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늘 이기기 위한 윷놀이만 했었는데 1등을 하기 위해서는 한 번도 이겨서는 안 되고 무조건 져야만 하니까요.

결국, 한 번도 이기지 못한 반이 우승하고 단 한 번 이긴 반은 2등을,

두 번 이긴 반이 3등을 하게 되었고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반은 꼴등이 되었습니다.

져야 이기는 게임인데 게임을 하다 보면 서로 이기려고 말판을 쓰게 됩니다.

이기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 경기를 하다가도

정신을 차리고 져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면서

아차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치며 한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게임이 끝나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긴 반은 이겨서 떨어졌다고 한탄하고,

진 반은 져서 이겼다고 환호하는 조금은 낯선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 이런 게임이 또 있을까요?

이겼다고 슬퍼하고 졌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어디에 가서 볼 수 있을까요?
하지만 모두 즐거웠다는 것입니다.

게임에서 진 반은 져서 즐거웠고 이긴 반은 이겨서 기뻤습니다.

모두가 즐거울 수 있었다는 것이 주님의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한 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즐겁게 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지고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십시오.

그러면 아마도 여러분의 귓가에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라는 말씀이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게 될 것입니다.


문용길 아론 신부 포동 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