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기도하는 삶/사제글

연중 제 28주일 주보 오늘의 말씀(김성훈 요사팟 신부님)

by 수영루치아 2006. 10. 19.

"거지는 '하느님의 배려' "


신학생 시절, 성서수업 시간에 이런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부님! 성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렇다할 직업도 수입원도 없으셨던 것 같은데, 예수님은 어떻게 먹고 사셨나요?"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참으로 수준 낮고, 공부 못하는 학생이라는 티를 팍팍 드러내는 질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때 교수님은 하도 어이가 없으셨는지 아니면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래, 예수님께서는 빌어먹고 사셨지! 우리 신부들도 빌어먹고 살아야 하는 거야, 그렇지!"
 결국 예수님의 삻을 따르겠다고 하는 사제의 삶은 '빌어먹는 삶' 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빌어먹는 삶! 쉽게 말해서 '거지의 삶' 입니다. 우리는 보통 "거지"하면 좋지 않은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유대인들은 우리와는 다른 '거지관(?)'을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거지를 "하느님의 배려"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들은 동족 간의 자선이나 선행을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일부로 여기며, 그 계약을 자주 이행하기 위해 동족 가운데 한 사람을 거지로 발탁한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유대인 사회에서 거지는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집도 있고 아내도 있고 구걸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동족들로부터 물질적인 혜택을 받은 거지는 학문을 연구해야하며, 동족이 핍박을 받거나 지헤가 필요할 때 랍비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거지가 정신적 선행으로 갚아주어야 한다고 합니다("세계를 움직이는 유대인의 모든것", 71~77 참조).
 이렇게 보니 사제의 삶이라는 것이 거지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어쩌면 사제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다운 거지, 진짜 거지처럼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자들이 주는 물질적 혜택으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신자들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함께 들어주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안고 살아야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으니 완전 거지와 똑같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이 준비해주신 '거지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거저 받고 살며, 하느님이 주신 자연의 도움으로 살아 숨쉬고, 하느님이 주신 자연의 열매를 먹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느님 덕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완전 거지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지로서의 의무를 망각할 때가 자주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그토록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아가고 잇으면서, 하느님이 주신 세상에서 잠시 머물다가는 존재들이면서 이웃들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해결해주어야 하는 거지의 본분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도 하느님의 참된 거지가 되어 그동안의 은혜에 대해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법'을 열심히 공부하여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