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일 ~ 전례의 꽃
그리스도께서는 구속사업과 하느님 영광을 드러내는 사업을 당신의 빠스카 신비를 통하여 완성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 죽음을 당신 죽음으로 쳐 이시기고 부활중심으로써 새 생명을 마련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수난과 부활에 빠스카 성 3일의 정점은 부활주일입니다. 빠스카 3일이라고도 하는 성 3일은 성주간의 후반부 3일인데 성 목요일 주의 만찬으로 시작되고 부활 전야제로 절정을 이루며 부활 주일 저녁기도로 끝납니다. 성 목요일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요한 13,34)을 주시면서 유언을 남기셨고, 마지막 만찬시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심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체성사와 함께 사제직을 설정하심으로써 당신의 구원사업을 세세에 전하여 모든 이가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날 주의 만찬미사를 거행 성체성사를 통하여 당신을 주심을 기념합니다. 이 미사는 '사랑의 새 계명'이 선포되는 미사입니다.
성주간 전례의 거행과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전 한 주간을 성주간이라고 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위대한 구원 사업을 이룩하시는 때이며, 교회 전례의 정점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성주간은 예수 수난(성지)주일부터 시작됩니다. 성지주일에 말씀의 전례때에는 예수님의 수난사가 봉독되며, 성 월요일에는 예수님의 죽음(장례)를 예고하고, 성 화요일에는 제자들의 배반을 예고 하며, 성 수요일에는 예수님이 당신이 어떻게 죽으실지를 예고합니다. 이 3일 동안에는 특별한 전례가 없고, 마치 폭풍 전야와 같이 고요함이 있을 뿐입니다.
성지(聖枝)의 의미
성서에 있는대로(루가 19,28-40;마태오 21,1 - 11;마르코 11,1-11;요한 12,12-1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이 빨마가지를 손에 들고 "호산나!"하면서 주님의 왕권을 부르짖은 데서 오늘날 '주님의 수난 성지주일'이 생겨났습니다. 주님의 수난 성지주일에는 성지를 축성하고 성지행렬을 합니다. 축성된 성지는 각 가정에 모셔지고 다음해 재의 수요일 전에 성당으로 다시 가져와서 그것을 태워 재의 수요일에 그 재를 축성하여 교우들의 머리 위에 얹으면서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성지의 의미는 우리 모든 인간은 한번은 죽어야 하고 또 구원을 위한 끊임없는 죽음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충고하는 것이며, 죽음의 비극에 처해있는 우리 모두에게 죽음에 대한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는 부활의 희소식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원래 주님의 수난 성지주일 전례는 400년 경부터 파스카의 신비를 완성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기념하는 것으로 베다니아에서 행렬을 시작, 올리브산을 거쳐 예루살렘 도성으로 입성하는 예식 입니다.
성체조배의 의미와 조배방법
예수님 사랑 온 몸으로 느껴요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사라져가고 있다. TV에서는 불륜관계가 진정한 사랑으로 둔갑해 미화되고 있고 인스턴트 사랑이 마치 젊음의 특권인양 왜곡되고 있다. 살길바쁜 현대인들은 궁극적인 사랑의 의미를 되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신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럴 때 현시된 예수님 앞에 앉아 조용한 마음으로 성체조배를 하는 것은 어떨까. 성체조배는 진리를 깨닫게 하고 사랑의 뜨거움을 맛보게 한다. 그러나 신자들 중에는 의외로 성체조배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이들이 많다. 이제 성체조배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가슴으로 느껴보자.
▲성체조배란
성체조배를 말 그대로 직역하면 "이른 아침 성체 안의 예수님께 드리는 경배"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체조배란 '성체 안에 현존하는 예수께 대해 존경과 애정을 가지고 대화함'을 뜻한다. 최근 들어 이 '조배'(朝拜)라는 말이 원래의 성체조배 의미에 합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체조배는 꼭 아침 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체가 모셔져 있는 곳이라면 언제라도 가능하다. 이러한이유로 일본 천주교회는 '성체예배'라는 말을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 성체조배는 조용한 성당에서 하나의 촛불에 의지해 홀로 두손모아 앉아있는 수도자의 모습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성체조배는 성체 안에서 현존하는 예수님과의 대화, 기도, 봉헌의 행위다. 성체조배를 통해 신자들은 진정한 사랑과 은총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성 알퐁소는 "하루 15분의 성체조배로 다른 여러 가지 신심행위를 24시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은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성체조배 왜 활성화 안되나
최근 들어 성체조배를 하는 신자들이 급속히 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신자들은 성체조배의 의미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성체조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친교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원기도 정도로 신앙생활이 유지되는 이유도 성체조배를 등한히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성직자들은 성체조배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신자들이 △성체안에 현존하고 계신 분이 누구인지 체험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영성체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느끼지 못하는 피상적이고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각 성당에서의 성체조배실 확보 어려움, 성체 현시에 대한 부담감도 성체조배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 성체조배 방법
성체조배에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서로 사랑하는 애인사이에서 특별한 대화술이 필요로 하지 않듯이 성체조배 또한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어떤 한가지 방법으로 성체조배를 규정지을 때 자칫 각 개개인의 개인적인 신심을 방해할 수 있는것이다. 그러나 성체조배에 대해 전혀 감이 없는 초보 신자라면 지속적인 성체조배회가 제안하는 다음의 순서에 따를 수 있다.
성체조배의 기본 자세는 우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 성체조배실에 들어가면 공손한 마음으로 큰절을 하고 "예수님 제가 왔습니다"고 말하고 예수님의 현존을 자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다음에 "주님 이 시간 당신께 찬미영광 드리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온전히 성령께 의탁하는 것이다. 이후 고요함 속에서 10-20분 정도 머무르며 자신의 생각, 의식 등 모든 것을 그대로 성체 안의 예수께 맡긴다. 이때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이는 이때 무릎을 꿇는 경우가 있는데 다리의 불편함은 분심이 들어 오히려 성체조배를 방해할 수 있다. 책상다리로 앉은 상태에서 호흡을 고르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성체 안의 예수를 직관한다. 예수님과의 대화 중에 때론 눈물을 흘릴 수도, 싸울 수도, 하소연할 수도 있다. 관상기도 혹은 성서묵상(초보자의 경우)이 끝나면 새로운 삶의 결심을 하고 이후 큰절을 올리는 것으로 성체조배는 끝난다. 성체조배 후에는 예수님과의 대화를 다시 한번 떠올려보는 것이 좋다. 성체 앞에서의 대화와 감정들을 노트에 기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다. 이러한 방법이외에도 성체조배 방법에는 미사 전례에 따른 방법이나 이냐시오 묵상법에 따른 방법 등 다양하나 일반 신자들
은 본당 사제가 권하는 방법을 따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성체조배를 매일 하는 수도자의 경우 영적 독서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초보자의 경우 성서를 읽는 것은 좋으나 원칙적으로 성체조배는 예수님과의 일대일 대화인 만큼 개인적인 영적독서는 다른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초보자의 경우 성체 앞에서 묵주기도를 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성체조배에 익숙해지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윤승현(엘리사벳․48) 간사는 "마음으로 느끼는 신앙을 살기 위해서는 성체조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매일 만나고 싶듯 끊임없이 사랑을 베푸는 예수님을 매일 만나고자 하는 노력은 신자로서당연한 의무"라고 말했다.
평화신문 98. 6. 14
세계 각국의 부활 관습
새옷
부활 때에 새 옷을 입는 관습은 초대 그리스도교 시대부터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대부분이 성 토요일 밤에 있는 부활성야 동안에 성세성사를 받았으며, 이때에 영세자들은 하느님 앞에 모든 죄에서 씻겨져 순결하고 거룩한 사람들로서, 또 성세성사의 은총의 상징으로서 흰옷을 입고 부활주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 때에 신자들은 흰 옷을 입지는 않았으나 그들이 사순절 동안 참회와 기도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그것을 의미하기 위하여 부활 때에 새 옷을 입었다.
부활 행렬
기원은 중세시대부터이며, 그것은 종교적인 관습으로 그 형태가 중부 유럽국가에서는 지금까지 지속된다. 부활주일 대미사 후에 사람들은 그들의 옷 중에서 제일 멋있는 옷을 입고 행렬을 하게 되는데, 그들은 잘 손질된 길을 따라서 도시에서부터 개방된 시골로 행렬한다. 행렬의 맨 앞에는 꽃으로 장식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상을, 어떤 지방에서는 부활초를 맨 앞에 세우고 나아가며 이 때에 그들은 기도를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행렬한다. 이 행렬의 목적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우리가 살고 있는 온 세상에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축복과 기쁨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부활 때 먹는 양의 고기
부활 때 어린 양을 먹는 것은 그리스도를 표시하는 승리의 기(旗: 어린양이 십자가를 들고 있는 그림)와 더불어 부활축제 기간의 가장 의미 깊은 상징이다. 이것은 유럽의 가톨릭 대부분의 가정에서 그러한 그림을 볼 수 있다. 부활절에 먹는 '어린양의 고기' 의 전례적 의미는 구세주에 대한 상징이며, 중세기의 신심을 우리에게 불어넣어 준다. 실제로 어떤 시대에는 교황의 부활 저녁 식사 주된 특징이 구운 어린 양의 고기였다. 현대에 와서는 그러한 풍습이 발전하여 부활 식탁의 한가운데 과자나 설탕으로 만든 부활 어린양을 놓아두는데, 이런 것은 서양의 가톨릭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은 부활 축제 식사 때에 주된 장식으로서 그 날이 기쁜 축제일임을 연상케 하는 상징이다. 그 외에 식탁의 중앙에 장식을 하게 되는데 대개 꽃과 초와 색칠한 달걀 등으로 꾸며진다.
부활 달걀
옛부터 달걀은 '봄' 이나 '풍요' 의 상징이었다. 달걀은 죽은 것같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생명이 계속되고 있으며, 마치 겨울의 뒤에 숨어 있는 봄과 같은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초대 그리스도교 시대의 살마들은 서로서로 봄의 시작을 달걀로 표시했으며, 그러한 날이 역시 새해의 시작이 되었다. 중세에 와서는 사순절 기간 중에 달걀을 먹는 것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신자들은 부활 주일에서야 달걀을 먹는 것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신자들은 부활 주일에서야 달걀을 주고 먹는 관습으로 변화시켰다. 부활 달걀이 풍요 혹은 다산의 표현을 대신하여 지금은 주님께서 새로운 생명으로 영광스러이 나타나신 돌무덤의 상징으로 되었다. 부활 달걀의 아름다운 색깔과 도안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게하여 주는 것이다.
부활 토끼
산토끼와 집토끼는 초대 그리스도교 조상들에게 다산의 상징으로서 생각되었다. 토끼는 집에서 키워졌으며 봄의 시작에는 선물로도 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부활 토끼란 관습이 여기에서부터 나왔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것은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 주려는 동화 중의 하나이다. 단지 이것이 종교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몇몇 나라에서 부활 때 뿐 아니라 아무 때에도 할 수 있는데, 우리 영혼이 깨끗하고 순결해질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다만 흰 토끼의 털의 색깔로서 설명하였던 것이다.
부활 과자
유럽 여러 나라의 국민들은 부활때에 러시아 부활빵(Paska), 독일 부활빵(Osterstollen=예수의 상징으로 쓰이는 빵), 폴란드 부활케이크(Baba Wiekanocna) 등과 같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빵이나 과자를 먹는다. 그런데 흔히 이러한 빵들과 과자들은 고기와 달걀과 함께 성 토요일에 사제에 의하여 축복되었는데, 부활 축제 시기에 이러한 특별하고 조그만한 형식을 가정에서 갖는다면 부활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고, 평온하고 일반적인 생활 안에서도 영신적인 교육을 얻게 되는 것이다.
부활 햄(han=돼지고기)
부활 때에 햄을 먹는 관습은 돼지에 대한 관념에서부터 유래한다. 이 동물은 인도 유럽 국가 사이에서 항상 행운과 성공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것에 기초를 두고 축제일에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전해졌다. 그리스도교 전통에는 영국에서 크리스마스 대에 '산돼지 머리'를 식탁에 내놓는 것과, 부활 때에 여러 나라에서 햄을 먹는 것과 같은 데서 전해졌다. 그래서 부활 햄이란 주님의 부활의 기쁨과 행복을 의미한다.
부활 백합
백합은 모양과 형태가 뛰어나게 아름답고, 빛나는 흰색과 청신함과 우아함을 볼 때 확실히 그것은 부활 의식에 감명을 주는 선구자라 볼 수 있다. 그 밖에 백합은 항상 미와 완전성과 선의 상징을 갖고 있으며, 성서에서도 흔히 이 꽃을 비유로 사용하였다.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백합을 보여 주시며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들 중에 하나만큼 화려하게 입지 못하였습니다"(마태오 6,30)하신 것으로 보아도, 그리스도께서는 백합이 지상에서 뛰어나게 아름다운 어떤 것보다도 영광스럽다고 하시는 것이니, 그분의 부활날에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러한 꽃을 사용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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