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페이퍼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연인이나 부부가 남자와 여자에 대하여 안다면, 많은 갈등이 감소되거나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집에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아내들도, 남자들이 말하는 능력이 여자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며, 말을 하더라도 감정을 읽어주기 보다는 문제해결적인 접근을 한다는 것을 안다면, 남편에 대한 불평이 조금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아내가 매일 저녁마다 전화를 붙잡고 한 시간 이상씩 동네 아줌마들과 쓸데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는 남편도, 여자들은 사적인 대화를 즐기면서 정서적인 지지를 추구한다는 것을 안다면, 아내에 대한 불만이 조금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차이를 안다고 연애나 결혼이 쉬워질까? 그렇지 않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고 해도 힘들고 어렵다. 상대방을 이해는 하지만 원인모를 섭섭한 감정이 들 수도 있고, 상대방을 바라볼 때마다 벽에 부딪히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으며,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경우들이 주변에 허다하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것은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생의 초기에 양육자와 맺는 관계를 통하여 대인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첫번째 대인관계라고 할 수 있는 양육자와 관계가, 이후의 모든 대인관계의 원형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양육자라고 하는 것은 친부모일 수도 있지만, 사정에 따라서 조부모나 그 이외의 사람도 될 수 있다. 대인관계에서는 누가 낳았느냐 보다도 누가 길렀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왜 양육자와의 관계가 대인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대인관계가 세 가지의 영향을 받는데, 이 세 가지가 바로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관계를 통하여 형성되기 때문이다. 세 가지란 바로 ① 스스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② 상대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③ 자신과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사람은 처음 태어나서 자신이 누구이고 어떠한 존재인지 홀로 깨닫지 못한다. 주변 사람의 반영(mirroring)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양육자가 아이에게 항상 “잘했다”, “최고다”, “이쁘다”는 반응을 해주면 아이는 이것이 자신의 모습인 줄 알게 된다. 양육자가 아이에게 거울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은 어떠한 존재인지도 양육자를 통하여 아이는 알아가게 된다. 예를 들어 양육자가 아이에게 일관되게 잘해준다면 아이는 세상이 좋은 곳이라고 느낄 것이고, 양육자가 아이에게 일관되게 못해준다면 아이는 세상은 믿을 만한 곳이 못된다고 느낄 것이다. 또한 양육자가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 일관되지 못하게 아이를 대한다면, 즉 기분이 좋을 때에는 너무 잘해주고, 기분이 안좋을 때에는 너무 못해준다면 아이는 세상을 예측할 수 없어서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표상과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표상이 만들어지는 동시에, 이 둘의 관계도 만들어 진다. 예를 들어 스스로를 잘 났다고 생각하고, 세상도 자신에게 언제나 호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충분히 믿고 신뢰하는 관계를 가질 것이다. 반면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자신을 언제나 힘들게 한다면 세상을 믿지 못하고 무시하면서 자신만을 믿는 독불장군식의 관계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는 못났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호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의존적인 관계를 가질 것이다. 또한 스스로도 못났다고 생각하고, 세상도 언제나 자신을 힘들게 한다면 위축되고 우울한 관계를 가질 것이다.
물론 이외에 정말 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고, 또 다양한 관계들이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관계가 양육자 사이에서 만들어졌든, 이것은 이후의 대인관계에서 반복되기 쉽다. 만약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의 어린 시절 양육자와 맺어서 당신의 마음 깊숙이 박혀있는 대인관계의 원형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대인관계의 원형은 당연히 연인이나 부부관계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왜냐하면 연인이나 부부관계는 대인관계 중 대인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부모(양육자)와의 관계가 너무 싫어서 정 반대의 관계패턴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기도 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채워지지 못한 욕구가 있다면, 이것을 채워줄 만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잔소리를 많이 하고 지배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은 순종적이고 자신에게 불평을 하지 않는 아내를 원할 수 있고, 또한 아버지에게서 애정을 받지 못한 딸은 남편에게서 따뜻한 아버지의 사랑을 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겉으로 보기에는 부모와 다른 사람을 선택했을지 몰라도, 막상 살다보면 “결혼 전에는 몰랐는데, 결혼하고 보니 부모랑 똑같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많이 한다. 자신은 몰랐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도 모르게 부모와 비슷한 사람을 고른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 깊숙이 있는 대인관계의 원형이 반복될 수 있어야 우리는 상대방을 편안하다고 느끼고 더 나아가 사랑을 느끼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삘(느낌)이 오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렸을 적 부모와 맺었던 관계에는 우리의 상처가 남아 있다. 부모와의 관계가 부부관계에서 반복된다면, 다른 말로 우리의 상처도 반복되기 쉬운 것이다. 부부 싸움이 가장 극심하게 진행되는 경우도, 배우자가 자신의 상처를 건드렸을 때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배우자는 부모와 비슷한 사람을 고른 만큼,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배우자도 자신의 상처를 빈번하게 건드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부부관계가 쉽지 않은 것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도 자신의 상처가 건드려지면, 마음 깊숙이 숨겨놓았던 원초적인 분노와 슬픔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수많은 연인을 헤어지게 하는 이유이고, 사랑을 맹세한 부부의 등을 돌리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원만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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