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삼일 [파스카 3일]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구속 사업과 하느님의 완전한 영광을 드러내는 사업을 당신의 파
스카 신비를 통하여 완성하셨다. 그분은 인간의 죽음을 당신의 죽음으로 쳐이기시고 부
활하심으로써 새 생명을 마련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성 3일은 교
회 전례주년의 절정이고, 성 3일의 정점은 부활주일이다.
성 3일은 성주간의 후반부 3일이다. 주님의 만찬으로 시작되고 부활 전야제로 절정을
이루며 부활주일 저녁기도로 끝난다.
성목요일
이날은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사랑의 계명’을 주시면서 유언을 남기셨고, 제
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심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
셨다. 또 이 성체성사와 함께 사제직을 설정하심으로써 당신의 구원성업을 세세에 전하
여 모든 이가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을 받게 하셨고, 올리브 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면서 하
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외로운 투쟁을 하셨으며, 마침내 사랑하시던 제자 유다 이스가
리옷의 배반으로 이교도들의 손에 붙잡히셨던 날이다.
성목요일 전례
성유를 각 본당에 분배했지만, 지금은 두 가지, 즉 성유 축성 미사와 주님의 만찬미사를
따로 거행한다.
성유 축성 미사:예수께서 당신 사제직을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주셨음을 기념하는
미사이다.
이날 아침에 주교좌성당에서 주교와 사제단이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성유를 축성한다.
이로써 주교와 사제들의 일치가 표현되고, 사제들은 서약 갱신식을 거행함으로써 사랑
과 봉사를 다짐하며, 축성된 성유를 나누어 감으로써 성사집행에 있어서 교구 전체의 연
대성이 드러나게 된다. 이때 축성된 성유는 사제들이 세례, 견진, 성품, 병자성사를 집행
할 때 사용한다.
이 미사 중에 신자들은 교구의 일치와 이날은 원래 주교를 중심으로 미사 한 대만 봉헌
하고 이 미사에서 축성한 성체와 사제들의 성화와 성소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주님 만찬 미사: 예수께서 수난하시기 전날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저녁식사로써 당
신을 만인에게 성체성사로 주심을 기념하는 미사이며,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
하여라”는 말씀으로 사제직을 설정하심을 새롭게 하는 미사이다. 또한 새 계약이 맺어지
고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는 새 계명이 선포되는 미사이다.
이날 전례에서는 대영광송을 장엄하게 노래하면서 풍금과 종을 울린 후부터 부활성야
미사에서 대영광송을 할 때까지는 풍금과 종을 울리지 않고 영광송도 하지 않는다.
세족례(洗足禮
)가 강론 후에 있다. 예수께서 “너희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제일낮은
사람처럼 처신해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처신해야 한다”(루가 22,26)
고 이미 말씀하셨고, 최후의 만찬 때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고 말씀하셨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을 본받아 선발
된 신자들의 발을 씻는다. 이것은 예수께서 사도들의 발을 씻으면서 남기신 사랑의 계명
을 상기시켜 서로 봉사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라는 예수님의 뜻을 가르치는 예식이다.
사랑의 헌금을 한다. 세례, 성품,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사랑의 계명을 주시는 주님의
명에 응답하는 행위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함이다.
영성체 후에 다음날[성 금요일]을 위한 성체를 본 감실에 모시지 않고 비워둔 채 성체를
수난감실에 모시고, 본 제대를 벗긴다. 이것은 예수께서 3일 동안 땅에 묻혀 계셨음을 상
징한다.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슬퍼하고 주님을 죽게 한 우리 죄를 뉘우치면서 잃어버
린 주님을 다시 찾아 만날 것을 다짐하도록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영성체 후 기도를 마친 다음, 사제는 십자가를 앞세우고 수난감실로 성체를 모셔
간다. 이
때 신자들은 죽음의 길로 가시는 예수님과 함께 가겠다는 마음으로 이 전례에 참례한다.
사제가 성체를 수난감실에 모시고 분향한 후부터 성 금요일 수난예식까지 신자들은 성체
조배를 한다. 이것은 올리브 산에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시기까지 기도와 번민으로 고통
당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함이다.
수난감실로 성체가 옮겨질 때부터 성 금요일 십자가 경배예절에서 십자가를 벗길 때까지
십자가는 가리워 둘 수 있다.
발에 친구 하시는 주교님

*성체조배 양식
자유로이 할 수 있으나 공동으로 하는 ‘한 시간의 성체조배’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다음
항 중 어느 것을 생략 혹은 첨가할 수 있다.
성가:116번 ‘주 예수 바라보라’[혹은 수난에 관한 성가].
루가 22,1-34 낭독[침묵 중에 잠시 묵상].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시고 사랑의 성사를 통하여 당신을 나누어 주시는데 사
람들, 특히 제자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넘길 음모를 꾸미고 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희생제사를 준비하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제일 높은 자리를 탐하고
있으며, 첫닭이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정할 베드로는 “저는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라고 장담만 한다.
예수께서 미사 중에 우리를 부르시고 십자가상의 희생을 다시 드리며 우리를 성화의 길
로 이끄실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아왔는지 반성
해본다.
성가:198번 ‘성체 성혈 안에 주님’[혹은 성체에 대한 성가].
요한 13,1-35 낭독[침묵 중에 잠시 묵상].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시며
이웃 사랑의 본보기로 발까지 씻겨 주시고 ‘새 계명’ 을 주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심
정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으며 유다는 능청을 떨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주신 세례성사의 은총을 우리는 어떻게 길렀으며,
형제의 불행을 못 본 체 하면서도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모심으로써 예수님을 불편하
게 해 드리지는 않았는가? 사랑의 계명을 잊고서도 예수님의 제자라 자부하지는 않았는
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본다.
성가:202번 ‘구세주의 성심이여’[혹은 성심에 대한 성가].
마태 26,36-46 낭독[침묵 중에 잠시 묵상].
예수께서는 3차례에 걸쳐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나와 같이 깨어
있어라. 나와 함께 단 한 시간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 하시며 함께 깨어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한다면 어찌 그 요구를 거절할 수 있으
며, 이렇게도 어렵게 구원해 주신 우리가 함부로 처신할 수 있겠는가? 주님의 고통과 죽
음에 함께 하고 열렬한 사랑을 드리자.
예수 성심 호칭 기도[가톨릭 기도서 39면]
성가:122번 ‘구원의 십자가 앞에’[혹은 수난에 대한 성가].
〈 우리의 생활 〉
우리 생활의 중심인 성체성사를 세우신 이 날,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함은 물론, 성체조
배를 함으로써 주님의 사랑에 일치하고 이웃사랑을 다짐한다. 연이어 성체조배할 신자들
이 올 때까지 성체 앞을 떠나지 않도록 한다.


성금요일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길’을 따라 죽음의 산 골고
타로 오르셨으며,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희생
제물로 죽으시고, 우리의 죽음을 물리치기 위해 땅에 묻히신 날이다.
성금요일 전례
교회가 미사를 드리지 않는 유일한 날이다. 미사뿐만 아니라 다른 성사도 집행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사가 그리스도의 행위이기 때문이며, 무덤에 묻히신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기 위함이다.
주님 수난 예식
예수님이 운명하신 오후 3시경에 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목상의 이유로 더 늦은
시간에 거행하기도 한다.
사제는 홍색 제의를 입으며 제단에는 십자가도 제단보도 없다.
제1부 말씀 전례:사제는 입장 후 즉시 제단 앞에 엎드려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말씀의 전례를 시작하는 특별한 예식을 거행한다. 긴 독서들로써 말씀 전례가 엄숙
하게 전개된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게 하며 인간의 죽음은 죄의 결
과임을 깨닫게 한다. (수난복음-요한 18, 1-19,42)
장엄기도:‘대보편 지향 기도’라고도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께 드리
는 기도이며 동시에 교회의 기도이다.
제2부 십자가 경배예식:비탄과 경건함 속에서 이루어진다. “보라, 십자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모두 와서 경배하세.” 이 십자가는 구원과 생명의 나무이며 끊
임없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징이다. “내 백성아, 내가 네게 잘못
한 것이 무엇이냐? 대답해다오”라는 예수님의 물음에 응답한다.
제3부 영성체:우리를 위하여 하느님의 어린양이 희생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으
로 이룩하신 승리를 기뻐하며 그분을 내 안에 모셔들인다. 주님께서 내 안에서 부활
하시도록 잘 모셔야 한다.
〈 우리의 생활 〉
이날 우리의 생활을 깊이 반성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신자
의 도리이다.
‘수난예식’에 참여하여 우리 주 그리스도의 운명(運命)에 참여함이 신자로서 마땅한
일이다.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기 위하여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켜야 한다. 법이 요
구하기 때문에 지킨다는 생각보다 자신의 죄악을 속죄하고, 게으르고 탐욕스런 자신
을 이겨 새 생활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재를 지켜야 한다.
성토요일
이 날은 교회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날이다. 제단이 벗겨진 채 그대로 있
고 미사도 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밤이 깊어 오면서 우리는 부활의 희망에 부푼다.
부활성야(復活聖夜)
이 밤은 하느님께서 인류를 위해 섭리하신 가장 밝고 아름다운 밤이다. 주님께서 무
덤을 여시고 영원한 승리를 이룩하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죄와 죽음으로부터 참삶
으로건너가심[파스카]을 기억하는 밤이다. 즉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자유로, 죄의
어두움에서 빛으로, 죄의 죽음에서 영생[부활]으로 건너감을 체험하는 밤이다.
성 토요일 전례
사순시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 토요일 밤의 전례는 모든 전례의 극치를 이룬다.
재생(再生)이 주종을 이루는 이 날의 전례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함을 깊이 깨닫게 한다. 예식을 밤에 거행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밤새워 기다린 데서 유래한다.
제1부 빛의 예식:불과 부활초를 축성하고[이 부활초는 부활시기 동안 내내 제대 옆
에서 빛을 발한다] 빛의 행렬을 한다. 부활로써 어둠의 권세를 몰아내고 세상에 나타
나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어 기다린다는 뜻에서 이 예식을 행한다.
제2부 말씀의 전례:일곱 개의 독서와 일곱 개의 화답송을 노래하며 구원의 역사를
되새기고 구원의 은총을 기원한 후 대영광송을 장엄하게 노래로 시작한다. 풍금과
종을 다시 울리고 이때부터 영광송을 한다.
제3부 세례 예식:세례수 혹은 성수를 축복하고, 세례식 후 모두가 촛불을 밝혀 들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영세자와 함께 세례서약 갱신을 하여
이미 받은 세례성사를 새로이 한다.
제4부 성찬 예식:죄악과 죽음이 물러가고 새롭게 펼쳐지는 세상은 그리스도와의 만
남으로써 시작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성체로써 우리와 결합되므로 우리는
죄악과 죽음을 근심하지 않고 살게 된다. 그러므로 새로 밝혀질 그리스도의 빛이 자신
안에서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날 제의는 백색이며, 파견 때 사제가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를 말하면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로 답한다.
이것은 부활 8부 동안 계속된다.
〈 우리의 생활 〉
사순시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거룩한 밤을 깨어 전례에 참여하고 ‘알렐루야’를 소리
높이 외쳐야 한다. 복음(루가 12,35-38)의 권유에 따라 신자들은 촛불을 밝혀 들고,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밤이다.
새 영세자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성체를 통하여 맞으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활로 부활하여야 한다.
우리의 생명을 되찾았음을 경축하는 부활 대축일을 맞아 대자 대녀를 찾아 세례의 은
총을 서로 나누어야 하겠다. 대부 대모와 대자 대녀 사이는 신친(神親) 관계이기 때문
에 부활 축일을 기하여 서로 찾아 기쁨을 나눔은 뜻있는 일이라 하겠다.

**부활시기(復活時期)
기쁨의 50일
이 시기는 처음에는 오순절(五旬節,Pentecoste)이라고 하였지만 후대에 와서'오순절'
이라는 명칭은 부활시기의 50일째 되는 날을 가리키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축제력에
서 중요한 축제는 일정 기간 동안 계속되었는데,마찬가지오 예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
도의 파스카 신비를 파스카 삼일 뿐만 아니라 칠주간, 곧 50일 동안 감사하고 기쁜 마
음으로 경축하였다.
전례주념 총지침(1969)에서는 옛 전통에 따라 "부활 주일부터 성령 강림 주일까지의
50일은 단 하루의 축일처럼, '큰주일' 처럼 기뻐 용약하며 지낸다"(22항)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이 50일 동안에는 평일에도 전례를 거행할 때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상징으로 부활초를 제대 옆에 켜 놓는다. 전에는 부활초를 주님 승천 대축일 복음이
끝난 다음 불을 꺼서 다른 곳으로 옮김으로써,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셨음을 보여
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은 부활 시기가 끝난 뒤에도
부활초를 세례당이나 세례대가 있는 곳에 놓아 두도록 배려 하였으며, 그 부활초에서
불을 댕겨 세례 받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초에 불을 붙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장례
미사 때에도 부활초에 불을 밝혀 관 옆이나 적당한 위치에 놓도록 하였다.
(수원교구 송영오 베네딕도신부의 전례교육 중에서 일부 발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어 당신을
온전히 희생제물로 십자가상에서 바치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 파
스카의 신비는 인류 구원사업의 절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영광스러운 부활로써 우리 인류를 절망에서 희망에로, 어두
움에서 광명에로, 죄악에서 은총에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에로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삶의 희망과 기쁨을 간직하게 되었다. “주 예
수님을 다시 살리신 분이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시고 우리를 그분 곁에 앉히
시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2고린 4,14 참고).
과월절(過越節)과 부활절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섭리로 에집트의 노예생활[죽음의 멍에]에서 해방된다. 이 해
방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 에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으로 내린 재앙에서 비롯된다.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를 자기 집 문설주에 바름으로
써 재앙을 면하게 되고 에집트를 탈출하게 된다(출애 12,1-14 참고).
하느님의 천사는 문설주에 피가 묻어 있는 이스라엘의 집은 지나가고 에집트의 맏이
를 모두 죽였다. 그래서 파스카(Pascha:지나가다, 통과하다, 건너뛰다의 뜻)라는 말
이 생기고, 이스라엘은 이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이날을 과월절이라 하며 어린양의
고기와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는다. 에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은 홍해를 마른
발로 건너가고, 메마른 광야를 지나가며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먹고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었으며, 요르단 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福地)에 들어갔다.
예수께서는 파스카 전야에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는 과월절 식사를 하시며 희생
되는 파스카의 어린양으로 표시된 당신의 몸인 생명의 빵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즉
“이것은 내 몸이다 ?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마르 14,22-24).
세례자 요한은 이미 예수님이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36)이라고 암시한 바 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과월절 오후에 십자가상 죽음을 당하신다. 이것은 참된 해방
[파스카]을 위해서, 즉 죄 많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로 건너가기 위해서
이다.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요한 13,1)고 사도 요한은 증언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파스카의 신비가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과
성실한 삶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영원한 생명으로 뻗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