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청색은 신부님께서, 검정색은 주송자가 합니다.
제1처 : 예수님, 사형선고 받으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마태오26.62-63) 대사제가 일어나 예수께 "이 사람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할 말이 없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부당한 사형선고 앞에서 침묵을 지키신 예수님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다불산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신, 그리고 죽은 라자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신 예수보다 더 진하게 우리를 감동케 합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리고 불리하다고 생각될 때, 자신의 정당성을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은 유혹에 번번이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자신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굴욕이나 모욕 앞에서 침묵할 수 있을 때, 그때 우리 자신은 조금씩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이라 믿어도 좋습니다. 침묵이야말로 인간을 승화시키고 성화시킬 수 있는 수단입니다.
침묵으로 성인들이 성장했고, 침묵으로 인해 하느님의 능력이 그들 안에 머물렀고, 침묵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가 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주님! 증인들의 거짓 증언 앞에서까지 침묵하신 당신을 닮아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입을 여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입술을 지켜주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2처 : 예수님, 십자가 지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루가9.23)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화가 치밀 때는 감정을 그대로 폭발시켜야만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혀를 사용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을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까? 건강과 장수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럴 수 있겠지만 신앙인이 그래서는 안됩니다. 원색적인 감정의 폭발은 미성숙의 노출이며 십자가를 거부하는 몸짓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서 커다란 십자가를 지신 스승께서 나를 따르라 하시며 묵묵히 앞장서 가시는데, 자신의 작은 십자가마저도 무겁다고 불평한다면 그것은 예수를 거부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은 예수를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만일 내가 누구를 향해서 든지 탄식을 늘어놓고 싶은 유혹에 진다면 하느님과 나 사이의 마지막 줄이 끊어질 것 같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십자가를 지고 앞장서 가셨기에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뒤를 따라야 합니다. 십자가를 거부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고, 매일 우리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불평없이 수용할 수 있도록 우리를 성숙시켜 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3처 : 예수님, 첫 번째 넘어지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전도서5.3) 사람은 모름지기 말이 적어야 한다. 걱정이 많으면 꿈자리가 사나와지고 말이 많으면 어리석은 소리가 나온다.
넘어짐은 실패입니다. 실패한 자는 말을 함으로써 그 실패를 위장하거나 보상하려 합니다.그러나 누구 때문에 넘어졌는지를 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만큼 진실에서 멀어지게 되며, 결국 쓸모 없는 소리만을 늘어 놓는 어리석음을 드러내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실패하게 된 이유가 다른 사람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실패 앞에서 침묵, 그것은 하늘나라의 체험이며, 넘어짐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는 활력소를 싹 트게 해줍니다.
사람은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주 이치에 궁하게 되니 도리어 묵묵히 중도를 지키는 것만 못합니다.
주님! 실패했을 때 구차스런 변명을 하지 않게 해주시고, 넘어짐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강한 의지력은 침묵 안에서만 배양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4처 : 예수님, 어머니와 만나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집회서9.18) 빈말하는 사람은 따돌림을 받고, 수다스러운 사람은 미움을 산다.
어머니와 아들이 침묵 중에 서로 만나십니다. 두 분의 침묵은 백 마디의 말보다 훨씬 더 서로에게 위안이 됩니다. 여기, 빈말이나 수다스러운 말이 필요 없는 진솔한 만남이 있습니다. 사실, 말이 많은 만남이라면 그것은 피상적이고 타산적인 만남이 되기 쉽다는 것을, 그리고 인격적인 만남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침묵하고 있는 고요한 상태에서 만나게 될 때, 각자는 서로에게 더욱 충실한, 진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때 우리는 참 사랑의 실체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가장 친한 친구라도 서로의 생각을 모두 말하면 평생토록 적이 될 것입니다.
주님! 침묵할 때만 당신을 만날 수 있으며, 침묵 안에서만 참 사랑이 꽃필 수 있다는 진리를 가슴 깊이 새기게 해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5처 :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지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마태오 6.4) 자선을 베풀 때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나쁜 일은 소리없이 남 몰래 해치우지만 선행을 하면서 침묵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자신의 존재 자체를 타인의 평가에 기대고 살은, 타자 지향적인 사람에게는 침묵 중의 선행이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기진맥진하시어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시몬은 말이 없습니다. 침묵 안에서 불완전한 인간 시몬이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침묵의 기적입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고 무시당하고 모욕당하며 억눌려 있는 이들에게 말없이 다가가서 따뜻한 손을 내밀 때, 그래서 그들의 짐을 함께 져줄 때, 시몬에게 나타난 침묵의 기적은 우리 안에서도 일어날 것입니다.
내게는 침묵을 통해서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체험이 매일 매일 자라고 있습니다.
주님! 선을 행할 때는 침묵하게 하소서. 타인에게 알려지기 위한 선행은 이미 선행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시고, 모든 인간은 마땅히 선행을 하도록 불리움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듣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6처 : 베로니카, 예수님의 얼굴을 씻어드리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이사야 52.14) 무리가 그를 보고 기막혀 했었지. 그의 몰골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인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베로니카의 수건에 박힌 예수의 모습은 피로 얼룩지고 망가져 볼품이 없습니다. 마구간의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인지라, 그분은 원래부터 볼품과는 거리가 먼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모습이 왜 볼품이 없어야 됩니까? 이것은 해답을 얻을 수 없는영원한 수수께끼요, 신비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예수께서 볼품이 없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볼품없는 사람 안에서 예수의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침묵은 우리로 하여금 억눌려 지내는 사람의 비굴한 모습에서, 가난에 찌든 이의 남루한 모습에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의 앙상한 모습에서, 버림받아 괴로워하는 이웃의 일그러진 모습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도록 해줍니다.
고통받는 벗이여, 사랑하는 벗이여! 벗은 귀한 존재입니다. 벗은 또 다른 그리스도입니다. 고통의 예수여, 내 결점을 참아 주소서. 갸륵한 내 뜻만을 살려주소서. 사랑스런 벗을 통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께 봉사하렵니다.
주님!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의 볼품없는 모습에서 당신을 발견하여 그들을 당신처럼 섬길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7처 : 예수님, 두 번째 넘어지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이사야 53.6)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멋대로 놀아났지만,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흥청대며 먹고 마시고 마구 지껄이면서, 다른 사람을 꾸짖고 비난하고 판단하며 깍아 내리는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신 예수께서 감당키 어려운 무게 때문에 또다시 넘어지셨습니다.
왜 다른 사람에 대해 비방의 화살을 쏘아대면서 간섭하고 참견하려 합니까? 눈에 보이는 것조차 명확하게 볼 수 없는 유한한 인간인 처지에, 어떻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타인의 내면 세계를 안다고, 남을 비판하고 심판하며 저울질 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께서도 인간을 심판하시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 주시지 않습니까?
하느님 홀로 심판자이시며 그분 홀로 인간의 마음 속을 알고 계시므로, 우리는 어느 누구의 마음 속 죄도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하느님께서 금하십니다.
주님! 두 번째 넘어지시어 신음하고 계시는 당신 앞에서 비로소 우리 죄를 알았습니다. 오만 불손한 태도로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을 무시하고 비난했던 죄를 아파하오니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8처 : 예수님,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하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루가 6.21)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십자가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면서 울고 있는 여인들을 위로해 주시는 예수는 모든 우는 이들의 위로자이십니다. 세상살이가 너무 힘겨워서, 아무리 노력해도 늘 가난하기 때문에, 타인의 멸시와 무시가 속상해서,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해서 울고 있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있습니다.
그 위로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안팎이 소란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걱정을 잠재우고, 하던 일을 멈추고 꿇어 앉아, 입을 다물고 귀를 열어야 합니다. 침묵 중에 있을 때에만,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이 위로의 말씀은 우리에게 천상의 기쁨을 미리 맛볼 수 있는 행복을 안겨 줍니다.
주님께서 안으로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 주님의 입으로부터 위로의 말씀을 받는 영혼은 복됩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새 길을 알아 이 세상이 소근거리는 소리에 귀기울이지 아니 하는 자는 복됩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상관치 않고 안에서 가르쳐주는 진리에 주의를 모아 듣는 귀는 복됩니다.
주님! 당신의 위로 외에는 어떤 인간적인 위로도 우리에게 헛되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인간의 위로에 걸려 넘어져서 당신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9처 : 예수님, 세 번째 넘어지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잠언 31.8) 너는 할말 못하는 사람과 버림받은 사람의 송사를 위해 입을 열라.
능력있고 똑똑하다는 자부심 때문에 마땅히 특권을 누리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세상이 자기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연출하는 소동 때문에 기진하신 예수, 세 번째 넘어지셨습니다. 세상이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는 것은 강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아우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좀 조용한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도 우리는 침묵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으로 용기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침묵으로 끝까지 버티며, 버림받고 할 말 못하며 억눌려 지내는 이웃을 위해 입을 여는 사람입니다.
항상 지껄이고 있으면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아주 조그맣게 성가신 일에도 참견하려들면 그것은 정서의 낭비입니다. 그래서 필요할 때 모든 노력을 집중 몰두 할 수 없게 됩니다.
주님! 주님 입을 열어야 할 때와 다물어야 할 때를 정확히 알 수 있게 판단력을 주시고, 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입을 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침묵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10처 : 예수님, 옷 벗기우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집회서 11.2-4) 외모가 훌륭하다고 사람을 칭찬하지 말고 외모가 볼품 없다고 경멸하지 말며 좋은 옷을 걸쳤다고 뽐내지 말아라.
입고 있던 옷마저도 빼앗기신 예수께서 이제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말이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더 많은 옷을 껴입기 위해 더 많은 말을 해야 하며,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은 추종자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말을 해야하며,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우리는 더욱 많은 말을 해야하며 더 화려하게 치장을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서게 될 때, 말이 불필요해지고 침묵에 젖어들게 되는데, 이 침묵은 평화를 동반하며 마음의 눈을 뜨게 해줍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겉꾸밈이나 옷이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마음의 눈이 열린 사람에게만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필요없는 군더더기로 몸을 휘감아서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지켜주시고, 늘 마음의 눈을 뜨고 살 수 있도록 침묵하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11처 :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갈라디아 6.14)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게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세상이 나에게 대해서 죽었는데 내가 세상에 대해서 기대하거나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세상에 대해서 죽었는데 세상에 대해 나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우리의 삶을 침묵의 길로 안내하는 표지가 됩니다. 우리가 십자가을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은 이 침묵 때문이며, 침묵으로 끌어안은 십자가가 우리를 예수와 일치시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울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인간과의 이 일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신비입니다. 그 신비에서 새로운 인간, 하느님의 본성을 나누어 받기로 된 인간,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게 새로 창조된 인간이 탄생합니다.
주님! 체면 때문에, 분위기 때문에 지껄이게 되는 뜻도 없는 소리들을 모두 못박아 버리고 진실된 말만을 하기 원합니다. 말과 소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올바른 식별력을 주시고, 진실한 말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임을 증거하게 해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12처 : 예수님, 숨을 거두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로마 4.25) 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죽음은 침묵입니다. 죽음 안에서 모든 것은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 안에서 부활이 잉태되듯이, 침묵 역시 부활을 잉태합니다.
모든 사람과 사물에서 떠나 죽음과 같은 침묵 속에 깊이 가라앉을 때, 외계의 소음이나 소란은 전혀 무의미하게 되며,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자기의 본 모습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이 순간 '깨달음을 체험할 수 있으며, 이 깨달음으로 인해 자기 자신 이상의 존재로 승화될 수 있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됩니다.
무릇 고통의 변형과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으려면 밖으로부터가 아니라 안으로부터 은총이 작용해야 합니다.
주님! 우리로 하여금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알이게 하소서. 죽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다는 진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매일의 삶에서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13처 : 예수님, 시신이 내리워지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요한 8.23) 너희는 아래에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침묵의 사람은 내려와야 합니다. 아래로 아래로, 원래 이 세상은 목소리 큰 사람, 떠드는 사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에 의해서 요리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떠들수록 높이 들어올림을 받게 되어 있는 듯합니다.
내려오는 사람과 올라가는 사람은 영원히 만날 수 없으며 다른 별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올라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 속해 있다면 내려오는 사람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야말로 하느님이 인간의 처지로 내려오시고, 인간이 어렵고 괴로운 순간이면 자신의 불행한 운명이라고 한탄하는 그 경지까지 내려오신 가장 깊숙한 하강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현세적 실존의 가장 쓰라린 상처에 영원한 사람이 와 닿는 어루만짐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님! 세상 안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해 있지 않는 사람의 아픔과 고독을 보시고 그들의 마음을 천상의 평화로 채워주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14처 : 예수님, 무덤에 묻히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면 찬송하나이다.
(야고보 3.2)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만물이 잠든 고요한 밤에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 앉아 하루동안 한 말을 되새겨볼 때, 아무 필요도 없는 말, 해서는 안될 말, 오히려 해로운 말을 했다는 자책으로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말을 안했기 때문에 후회하는 일보다는, 말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가슴을 치는 일이 얼마나 더 많습니까?
인간이 위대한 것은 말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지만, 또 한편, 말 때문에 인간은 짐승보다 더 못한 비참한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빚어지고 있는 불화와 갈등의 대부분은 말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무익하거나 불필요한 말들을 모두 묻어버리고, 유익하고 필요한 말만을 골라서 하게 될 때, 우리 모두는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침묵은 미래 세계의 신비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순례자로 남게 하여 우리를 이 시대의 걱정에 얽매이지 않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거처하는 성령의 불을 지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 말씀의 창조적이고 재 창조적인 능력에 참여하는 말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주님! 말을 잘 하기 위해 우선 침묵할 수 있게 하소서. 혀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 나오는 그런 말을 하게 하소서. 심판대 앞에 서서 자신의 입으로 한 모든 말들을 해명하게 되는 날,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지금 침묵으로 말하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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