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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하는 삶/가톨릭소식

2008/9/2 미리아나 발현 증인에게 알려 주신 성모님 메세지

by 수영루치아 2011. 5. 3.

"사랑하는 아이들아! 내 주위에 모인 너희에게 이웃을 사랑하도록 엄마의 사랑으로 부탁한다.

아이들아, 멈춰 서거라. 너희 형제의 눈을 보아라.

내 아들 예수님이시다. 그 눈에서 기쁨을 보았거든 함께 기뻐하여라.

네 형제의 눈에 고통이 있거든 부드러움과 선함으로 그것을 없애 주거라.

너희는 사랑 없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란다.

사랑이야말로 유일한 효과를 발휘하며 기적을 행한다.

사랑이 너희로 하여금 내 아드님과 일치하게 할 것이며 내 마음의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아, 사랑하여라."

 

성모님께서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모든 성물을 축복하셨다.

다시 한 번 우리 목자들을 위한 기도를 해달라고 당부하셨다.

 

  2008년 8월 25일 메시지 서두에서 성모님께서는 회개하고 너희 삶으로 증거하고 사랑하고 용서할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기쁨을 세상에 전할 수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것이 회개로써 평생을 걸쳐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하느님과 만나면서 진정한 회개가 시작되는 것이고,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난 사람만이 이런 하느님과의 만남에 대해 증거할 수 있습니다. 자주 사람 사이의 만남은 건성일 수 있지만 하느님과의 만남은 마음과 영혼의 깊은 곳으로부터 도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 전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매번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소진했다고 여겨질 대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는 매번 예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겼다고 느껴질 때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회개는 두 광정을 거칩니다. 첫 번째는 적어도 우리 인생에서 한 번 정도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우리 영혼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 제가 당신 편에 서기로 결심합니다. 과거의 삶과 죄를 버리고 깨끗해져서 당신과 결합합니다.' 라고, 하느님 편에 속한다는 결심은 근본적인 선택입니다. 두 번째 회개의 과정은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자문해 보는 것입니다. '정성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켰는가? 이웃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교회를 더욱 아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두 가지 과정을 완성할 때 바른 영신생활의 방법을 깨닫는 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성모님께서는 히개하고 증거하도록 지속적으로 격려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 성모님의 말씀에 무감각하고 귀머거리, 눈먼 장님이 되어서 성모님의 말씀이 냉담한 사람들이나 하느님의 은총지위에 있지 못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처럼 행동하곤 합니다. 당연히 성모님은 그런 사람들도 염두에 두시지만 특히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바리사이들"과 순진하고 착한 척하면서도 용서하는데 극히 인색한 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하십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 이번 메시지에서는 예수님을 흠숭하라고 다시 상기시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말마디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시기 대문에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을 통한 깊은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흠숭을 드리는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환영하십니다. 도 우리 영혼이 그것을 원합니다! 완전하게 그분께 봉헌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희망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정의는 무한합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희망을 지닐 줄 아는 것이 인간이다." 희망은 이 지상의 여정에 머물지 않도록 힘을 주고, 용감하게 미래를 만나기 위해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우리 희망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만 편안합니다. 희망은 항상 미래를 향해 있습니다. 사랑은 지금 일어나야 하는 현실이며 믿음은 그것을 실현하도록 돕습니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항상 똑같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이런 확신에서 출발하다보면 도대체 회개가 무슨 필욯가 있는지 자문해 보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세상은 변하다. 하지만 더 악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인은 과거 세대가 지녔던 파괴력보다도 더욱 세상을 심하게 파괴할 수 있는 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회개는 과연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회개로부터 선이 도래할 수 있는가? 다른 이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그저 그런 만남도 아니고, 엄마, 형제, 자매, 길에서 만나는 좋은 친구를 만나는 그런 익숙한 만남도 아닙니다. 누구든지 늘상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의 이런 "육체"인 만남을 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하느님과의 만남은 다른 특성을 지닙니다. 오늘 날 하느님과의 만남을 정의하는 한 방법중의 하나인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계심을 우리가 믿고 있는지도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지주의자들이 되거나 무신론자들의 숫자가 증대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세상 삶에서 소유한 것들을 믿지만 우리 신자들은 주님을 따르고 그분의 말씀을 믿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말씀하시는 그분과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영생의 삶은 이 세상을 살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영혼은 자주 이런 자문을 합니다. '내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 그렇다면 믿음에 바탕을 둔 선택에 적합하게 다른 시각으로 이 세상의 내 인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봉사할 때마다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는 예수님이 가르침에 소홀해졌다고 여겨질 때, 그분의 이름 안에서 그분의 초대를 수락하지 않았을 때 필요한 것입니다. 회개는 사랑할 능력을 잃었을 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