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김 루치아(1769-1839, 과부, 기해박해 때 옥사)
성녀 김 루치아(1769-1839, 과부, 기해박해 때 옥사)
교우들 사이에서 ‘꼽추 루치아’로 불리던 김 루치아는 서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801년 신유박해 이전부터 천주교를 믿었으나 외교인에게 출가한 뒤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남편이 신자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교우들을 만나는 것도 몹시 싫어했기 때문이다.
결국 루치아는 집을 나와 교우들의 집으로 전전하며 집안일을 도와주고 아이들과 병자들을 돌보며 지냈다.
교우들은 이러한 루치아를 기쁜 마음으로 반겼다.
비록 루치아는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비천한 사람이었지만,
지혜로웠고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자신의 영신생활에 열중하였다.
한번은 어떤 외교인 양반이
“지옥이 그렇게 좁다고 하니 어떻게 사람을 그리 많이 집어넣을 수 있을꼬?” 하고 빈정대자,
루치아는 “당신의 그 작은 마음이 비록 만 권 서적을 품고 있어도
그것 때문에 좁다고 생각하신 적은 한번도 없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그 양반은 “천주교인들은 무식한 사람이라도 모두들 조리있는 말만 한다.”며 크게 감탄했다.
김 루치아는 일흔 한 살이 되던 기해년에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갔다.
옥에 갇혀있을 대 이미 몸이 매우 쇠약해졌음에도 병자를 도와주고
얼마 안되는 돈까지도 나누어주며 애덕을 실천하였다.
포장이 교우들의 이름과 주소를 대라는 심문에 그녀는
“이미 죽기로 작정했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고 대답하였다.
얼마 후 그녀는 기력이 쇠한데다 태형 삼십 도를 맞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옥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