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하는 삶/사제글

상황의 역전 - 박찬용신부님의 오늘의 말씀

수영루치아 2013. 3. 3. 09:18

상황의 역전 (요한 11, 35; 루카 19,41; 마태 5,1-12; 마르 2,17; 루카 5,27-32; 19,1-10.......)

 

복음서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웃으시다.” 라는 대목이 전혀 없는 반면에,

“눈물을 흘리시다.”라는 대목은 한 번 이상 나옵니다(요한 11, 35; 루카 19, 41 참조).

하지만 그분의 “눈물을 흘리시다.” 속에는 진정한 “웃으시다.”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으로”오르셨을 때(마태 5, 1-12)도 그분의 첫 말씀들은 진정 환희의 외치심이셨습니다.

“복된 사람들!” 예수님께서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선언하시는 저 사람들은 실상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난, 슬픔, 괴로움, 굶주림, 박해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세상의 잣대로 볼 때 분명히 불행한 사람들인데도

그분은 자신 있게 그들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분은 상황의 역전이라는 전망에서 세상을 보셨습니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상황의 역전을 가져오게 하시면서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실제로 그들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상황의 역전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기인하는 것이지 세상의 논리에 기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안에서의 이 상황의 역전을 믿으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하러 오셨다는 말씀도(마르 2, 17), 세리 레위(루카 5, 27-32)와

세관장 자캐오(루카 19, 1-10)를 부르시는 말씀도,

나병 환자(루카 5, 12-16)와 앞 못 보는 소경들(마르7, 22-26; 10, 46-52)과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던 여자(마르 5,25-34)의 치유도,

야이로의 딸(마르 5,35-43)과 나인 마을 과부의 아들(루카 7,11-17)과

베타니아의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기적(요한 11,1-44)도, 당신 자신의 죽음과 부활(요한 19-21장)도

이 상황의 역전을 가져오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기인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오늘 복음 말씀 역시

“잘라버리게!”와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사이에 상황의 역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면 수많은 위기와 실망과 좌절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지 분명히 상황의 역전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위기와 실망과 좌절도 먼 훗날에 다시 돌아본다면

분명히 상황의 역전이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어제와 내일의 상황을 역전시키는 기점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을 희망과 생명으로 역전시키시는 하느님께 믿음을 갖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우리가 맺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더욱 활기있게 살아갑시다.  

 

 

                                                                                

                                                                                 박찬용 사도요한 신부 원로 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