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일 주보 박요환 신부님의 글
나자렛 예수의 이름으로
사도행전 3장을 읽다보면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불구자를 만난다. 그 불구자는 자선을 요청하였지만 베드로 사도는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3,6). 정말 아름답고 황홀한 광경을 그려낼 수 있는데 여기에는 “나자렛 사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와 “일어나 걸으시오”라는 말씀이 나에게 오랫동안 남아 있다.
오늘 복음에서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고백이 나온다. 더러운 영은 나자렛 사람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나의 일에 방해하지 말라는 표현이겠다. 그러나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이름 안에서 우리는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힘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많은 성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의 이름으로 살았다. 우리도 매번 기도를 시작할 때나 마칠 때 나자렛 사람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끝맺는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며 새로운 탄생을 맞이 하였다. 그리고 이제 내 이름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나자렛 사람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나자렛 사람 예수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 때에는 그저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는 사람이고, 세상 것에 길들여져 살아가는 사람일 수 밖에 없다. 모든 판단 기준이 세상의 판단기준으로 바라보아야하고, 그 판단기준으로 내가 평가받게 된다. 그러나 세례를 통해 우리는 세속의 판단기준에 죽음을 고하고 이제 나자렛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다. 사도행전의 그 불구자처럼 이제 일어나 걸어가며 새로운 사람다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나는 오늘 나자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가는 존재인가?하는 질문을 다시 해보아야 하겠다. 정말인가? 아니면 나자렛 사람 예수의 이름이 나의 삶의 걸림돌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으시다고 이렇게 나를 괴롭히느냐고 고하는 더러운 악령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지 다시금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자렛 사람 예수의 이름, 그 이름에서벗어나고 싶어도 세례를 받은 우리들은 그 이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우리가 그분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다. 내가 당신의 이름으로 얼마나 나쁜 행위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거리를 두려고 애써 보아도, 세속의 판단기준으로 삶을 살려고해도,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화를 내보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그분의 이름에서 오는 사랑이 우리의 벗어남과 악행보다 더 크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문뜩하게 된다. 언제나 먼저 용서하시는 분 당신의 이름은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멘.
박요환 신부 / 만수3동 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