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주보 차호찬 신부님 글
무르 익는다는 것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일 기운 빠지게 하는 말을 찾아봤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껏 늘 그렇게 해왔어.”라는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앙의 나이가 들수록 더욱 위험한 독을 뿜게 만드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차츰 결실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순간에 알갱이는 빠져버린 겉모습만 갖고 있다면 어찌 진정한 삶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나 자신을 되짚어볼 수 있다는 것은 또 한 번 생명이 움트는 계절을 맞이하여 무르익어가는 기회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잃었던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음식을 나누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니 그보다는 그 장면을 못마땅해 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되찾은 아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안아주며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화를 내는 큰아들의 모습처럼. 주님께서 오늘 우리 앞에 놓였던 수치를 치워주시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고진감래(苦盡甘來)도 하느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음을 겸손하게 고백하게 됩니다. 지난주 회개를 통하여 신앙인이 된 것을 기뻐하게 되었다면, 오늘은 그 신앙인의 모습이 영글어 가기를 기도해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2코린5,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움의 목적은 하느님과의 화해와 피조물들 간의 화해에 있음을 간곡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의로움은 모든이에 대한 사랑과 화해의 삶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무르익는다는 것, 그것도 신앙인으로서 무르익는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것을 은총의 시기에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사랑과 화해의 삶이 되도록 이끌어주는 하느님께 의탁하는 어린이가 되어보면 어떨까요?
차호찬(시메온) 신부 | 숭의동 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