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
사순 시기
사순시기는 우리의 육체적 고신극기나 단식을 통한 참회의 생활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참여하여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사십일(사순) 40이라는 숫자는 성서에서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하고 정화하는 데 필요한 기간으로 나타난다.
노아 홍수로써 새 세상을 준비하는 데 40주야 비가 내렸고, 이스라엘 이 약속된 복지에 들어가기 위해 40년간 광야에서 준비해야 했고, 모세가 하느님께 계명을 받기 전에 40주야 엄재하였고, 예언자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가기 위해 40주야를 걸었고,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주야 단식하였으며,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지상에 머무셨다. 그러므로 40일 동안 지상에 머무셨다. 그러므로 40이라는 수는 참회와 속죄로 생활의 혁신을 촉구하며 하느님과 만나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는 기간이다.
개신교 성찬례
가톨릭 교회에서 미사 중에 거행하는 성찬례는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셨고 또 행하도록 명하신 예배행위로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보통의 예배는 기도문이나 독서 등의 말씀과 앉고 서고 인사를 나누는 등의 행동이 따르는 데 비해 성찬례는 빵과 포도주, 물이라는 질료적 요소를 가지고 거행됩니다. 성찬례는 교회의 예배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형태 가운데 하나이며, 말씀의 전례와 함께 미사 전례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예배 형태입니다.
이 성찬례는 개신교에서도 거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톨릭 교회에서 거행하는 성찬례와는 세 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며, 이는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와의 일치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 신학적 문제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첫째,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믿음의 차이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찬례를 통해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고 가르치는 반면에 개신교는 교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주로 주님 현존의 상징적인 의미로써 거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 가톨릭 교회는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제사가 재현되고 그 효력이 드러난다는 제사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 반면에 개신교는 성찬례를 단순히 성찬의 식사로만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셋째,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제로 서품된 사람만이 성찬례(성체성사)를 유효하게 거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만의 고유한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점 때문에라도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의 성찬례를 완전히 유효한 성체성사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의 의미
교회는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 로 기념한다. 교황 비오 11세는 당대에 만연하던 무신론과 세속주의를 경계하고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1925년 이 축일을 제정했다.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 생애에 있었던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 날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가 하느님 나라의 참된 왕임을 기억하고 선포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왕국은 이 세상의 왕국과는 다르며 그리스도가 영광 중에 재림하 때 완성될 왕국을 말한다.(요한 18,36참조)
또한 신자들은 이날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왕직에 함께 참여하게 됨을 기뻐하며 경축한다. 따라서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이 축일을 지내며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돼야한다" (마르 10, 43 참조)는 말씀을 상기하면서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목숨을 다해 하느님과 사람들을 섬길 자세를 다지도록 권고한다
대림시기의 전례는 연중시기와 어떻게 다른가요?
예수 그리스도님의 성탄과 재림을 준비하는 대림시기의 제1주일은 오실 구세주를 깨어 기다려야 하는 교회의 종말론적 자세를 강조하고, 제2주일은 구세주의 오심에 회개하도록 촉구하고, 제3주일은 구세주께서 오시 날이 가까웠으니 기뻐하고 권고하며, 제4주일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와 그분이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이 시기의 미사와 성무일도의 기도문들은 주로 이사야 예언서와 세례자 요한의 설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사야 예언서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백성들을 위로하고 메시아의 구원 시간의 도래를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예언자로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세주가 오셨음을 선포하여 신약의 시간을 여는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입니다.
대림시기에는 제대 주위의 화려한 장식을 피하고, 대영광송을 하지 않으며, 사제는 사순시기와 같이 속죄와 회개의 의미가 담긴 자주색 제의를 입게 됩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이러한 전례를 지내는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님의 탄생을 기억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1996.12.8부산
대림초의 의미
대림시기에는 성탄을 준비하며 희망을 갖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의미로 '대림초' 를 켜는데 싱싱한 사철나무 위에 4개의 초를 마련합니다. '대림환' 이라고 부르는 사철나무는 우리에게 내려질 싱싱한 하느님의 새로운 생명을 뜻하고, 4개의 초는 구약의 4천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구세주가 어느 정도 가까이 오셨는지 알려줌으로써 마음의 준비를 갖추도록 매주 촛불을 하나씩 늘려 켜나갑니다.
다양한 대림 풍습 이밖에도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풍습이 있
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이듯이 사람들도 이것을 모방해서 서로 사랑을 나누는 정성이 담긴 선물을 주고 받거나, 사랑과 화해의 글이 담긴 성탄 카드를 주고 받습니다. 또한 각 가정에서는 성탄 나무 장식을 꾸미기도 합니다. 그 아래에
는 예수 성탄의 구체적인 상징으로서 흔히 작은 구유가 놓여집니다.
1996.12.15 부산
무릎을 꿇음
공손히 꿇어 앉음을 장궤라고도 합니다. 교회는 흔히 장궤할 수 있는 장궤틀이 있습니다. 이 틀에 무릎 위의 몸을 세운채 꿇는 동작을 의미하며 이는 당신은 지존하신 하느님이시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고백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손을 합장하고 허리를 깊이 굽히는 우리 고유의 동작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미사 중 '주님의 기도' 후엔 왜 '아멘'하지 않나요?
미사에서 '주님의 기도'는 성찬의 전례 중 영성체 예식의 시작으로 '기도의 초대', '주님의 기도', '부속기도', '영광송'까지를 뜻합니다. 즉 주님의 기도는 4개의 기도가 모여 하나의 독립예식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기도의 초대'에서 사제는 감사의 기도를 끝낸 후 성작과 성반을 제대 위에 놓은 후 손을 모으고 "하느님의 자녀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또는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하고 교우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다함께 바치자고 권고합니다. 그러면 교우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로 시작하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그런 다음 사제는 혼자 "주님, 저희를 …" 하고 부속기도를 바칩니다. 부속기도가 끝나면 전체 신자들이 "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하고 영광송을 바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광송이 주님의 기도와 부속기도를 끝맺는 공동체의 응답으로 전형적인 전례 응답인 "아멘"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그래서 미사 중에 바치는 '주님의 기도'끝에는 "아멘"이 없습니다.
부산주보 7월 19일
미사때 읽는 성경 구절을 어떻게 정해지나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모든 예배 행위가 하느님 말씀의 선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도록 배려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전례 안에 말씀의 전례가 들어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전례는 바로 성찬례(미사)입니다. 이 성찬례는 다시 두 개의 중심축을 가지고 있는데,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입니다. 말씀의 전례의 중요성이 돋보이도록 교회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 아래 이를 재구성했습니다.
첫째, 적어도 복음 대부분을 신자들도 주일 미사 때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행적과 말씀을 기록한 성경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가'해에는 마태오 복음을, '나'해에는 마르코 복음을, '다'해에는 루가 복음을 읽도록 구성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연중 2주와 '나'해 17-21주에 읽도록 하여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라면 3년안에 복음의 주요 부분을 다 경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둘째, 주일 미사에서 제1독서는 구약에서, 제2독서는 신약에서 따오되, 구약성서는 그날 복음의 주제와 일치하는 것을 고름으로써 신자들이 그날의 복음 내용을 더 잘 이해하도록 배려함과 동시에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2독서는 복음과 상관없이 바울로의 편지들과 야고보서를 연속적으로 읽도록 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제2독서는 생략될 수도 있습니다.
셋째, 평일 미사를 위해서는 1년 안에 복음서를 순서대로 읽도록 배열하는 한편, 제1독서는 구약과 신약의 주요 부분을 추려내어 2년 안에 다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성경 독서를 배치한 까닭은 주일 미사에 충실한 이는 3년 안에, 평일 미사에도 참여하는 이는 1년 안에 성경의 주요부분을 대함으로써 신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의 말씀을 떠난 그리스도인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개인적으로도 끊임없이 성서를 가까이해야 함을 뜻한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