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자료/노인교육
노령사회 '죽음준비교육' 필수
수영루치아
2007. 8. 19. 08:18
노령사회 '죽음준비교육' 필수
이규선 평생교육실천협의회장
지난 5월 말, 가정의 달 특집으로 방영된 ‘아빠, 안녕’이라는 TV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말기 암 환자의 처절한 고통과 존엄한 죽음을 위한 마지막 선택,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등은 죽음을 앞둔 환자나 가족들이 소중하고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해 준 훌륭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어떤 이는 천수를 다하고 잠자듯이 죽음을 맞이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렇든 저렇든 이 세상에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정서는 죽음에 대한 담론을 터부시한다. 오죽하면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고 할 수 있는 90대 노인 역시도 죽음 얘기는 듣기조차 꺼린다. 그렇다고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인교육현장에서 만나는 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이하긴 싫다고 얘기한다. 게다가 인공호흡기나 심박동장치, 주렁주렁 달린 각종 주사약을 연상시켜드리면 합창으로 끔찍하다고 야단들이시다.
인간의 생명 또는 죽음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은 누가 해야 하는가? 지난 97년에 있었던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보았듯이 만약 의사가 환자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하여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간 바로 시술의사에게 살인방조죄가 적용될 것이다. 과연 죽음의 문제를 이렇게 덮어두고 피해서야 될 일인가? 자신의 생명에 관한 결정을 남이 내리도록 방치해도 좋은 것인가?
요즘 선진국에서는 환자 스스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것은 의식운동차원에서 세계적으로 조금씩 확산되는 추세이다. 이들은 적어도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경우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피하고, 짧은 여생을 자신이 선택한 모습으로 알차고 후회 없이 살아갈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 이들의 활동이 활자로 소개된 알폰스 데켄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저서를 통해 존엄하게 죽을 권리라는 문구를 처음 접하였다. 이전까지는 나 역시도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때 그 충격이 평생교육현장에서 죽음준비교육을 부르짖은 동기가 되었다.
평생교육현장에서 죽음준비교육은 필수과목이라 할 수 있다. 죽음준비교육은 임종을 돕는 호스피스교육과 다르다. 호스피스활동이 말기 암환자와 같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죽음준비교육은 이들을 포함하여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대상이 된다.
젊은이들에 비해 여생이 적은 노인들에게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찾도록 도와 짧은 시간이라도 소중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갑작스런 죽음에 노출되어 있는 중장년기 사람들에게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의식교육과 함께 차분히 정리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죽음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 청소년들에게 죽음준비교육은 인생의 유한함과 존엄함을 일깨워주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잘살도록 돕는 것이 바로 죽음준비교육인 것이다. 말 그대로 웰다잉이 곧 웰빙이라는 말이다.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평생학습사회라는 말에 걸맞게 교육시설과 교육프로그램들이 늘고 있다. 또한 웬만한 교육프로그램은 수강료가 무료이거나 최저수준으로 책정되어 교육기회 차원에서 많은 배려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아직도 취미 여가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평생교육법이 사회교육법을 근간으로 개정 된지 7년이 지났다. 지금쯤은 진정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선택될 수 있는 안목을 요구해도 되지 않을까? 지역사회 다양한 평생교육기관의 프로그램 안내지에 ‘죽음준비교육’ 강좌명이 당당하게 자리하길 기대해 본다.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이규선 평생교육실천협의회장
지난 5월 말, 가정의 달 특집으로 방영된 ‘아빠, 안녕’이라는 TV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말기 암 환자의 처절한 고통과 존엄한 죽음을 위한 마지막 선택,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등은 죽음을 앞둔 환자나 가족들이 소중하고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해 준 훌륭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어떤 이는 천수를 다하고 잠자듯이 죽음을 맞이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렇든 저렇든 이 세상에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정서는 죽음에 대한 담론을 터부시한다. 오죽하면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고 할 수 있는 90대 노인 역시도 죽음 얘기는 듣기조차 꺼린다. 그렇다고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인교육현장에서 만나는 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이하긴 싫다고 얘기한다. 게다가 인공호흡기나 심박동장치, 주렁주렁 달린 각종 주사약을 연상시켜드리면 합창으로 끔찍하다고 야단들이시다.
인간의 생명 또는 죽음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은 누가 해야 하는가? 지난 97년에 있었던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보았듯이 만약 의사가 환자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하여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간 바로 시술의사에게 살인방조죄가 적용될 것이다. 과연 죽음의 문제를 이렇게 덮어두고 피해서야 될 일인가? 자신의 생명에 관한 결정을 남이 내리도록 방치해도 좋은 것인가?
요즘 선진국에서는 환자 스스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것은 의식운동차원에서 세계적으로 조금씩 확산되는 추세이다. 이들은 적어도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경우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피하고, 짧은 여생을 자신이 선택한 모습으로 알차고 후회 없이 살아갈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 이들의 활동이 활자로 소개된 알폰스 데켄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저서를 통해 존엄하게 죽을 권리라는 문구를 처음 접하였다. 이전까지는 나 역시도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때 그 충격이 평생교육현장에서 죽음준비교육을 부르짖은 동기가 되었다.
평생교육현장에서 죽음준비교육은 필수과목이라 할 수 있다. 죽음준비교육은 임종을 돕는 호스피스교육과 다르다. 호스피스활동이 말기 암환자와 같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죽음준비교육은 이들을 포함하여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대상이 된다.
젊은이들에 비해 여생이 적은 노인들에게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찾도록 도와 짧은 시간이라도 소중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갑작스런 죽음에 노출되어 있는 중장년기 사람들에게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의식교육과 함께 차분히 정리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죽음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 청소년들에게 죽음준비교육은 인생의 유한함과 존엄함을 일깨워주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잘살도록 돕는 것이 바로 죽음준비교육인 것이다. 말 그대로 웰다잉이 곧 웰빙이라는 말이다.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평생학습사회라는 말에 걸맞게 교육시설과 교육프로그램들이 늘고 있다. 또한 웬만한 교육프로그램은 수강료가 무료이거나 최저수준으로 책정되어 교육기회 차원에서 많은 배려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아직도 취미 여가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평생교육법이 사회교육법을 근간으로 개정 된지 7년이 지났다. 지금쯤은 진정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선택될 수 있는 안목을 요구해도 되지 않을까? 지역사회 다양한 평생교육기관의 프로그램 안내지에 ‘죽음준비교육’ 강좌명이 당당하게 자리하길 기대해 본다.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